바이루 총리 이전 총리였던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지난해 10월에 2025년 예산안을 발표했어. 올해 예산안과 마찬가지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지출을 줄이겠다는 내용이 담겼지. 이 예산안을 두고 의회는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불신임안이 331표로 가결되면서 임기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실각하게 돼.

3개월만의 실각은 프랑스 최단기 기록이야. 그리고 1962년 이래로 무려 62년 만의 불신임안 가결이었어.

이후 지명된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 전임 총리의 예산안과 연금 개혁 관련해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고, 그때마다 의회에선 바이루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이 나왔어. 하지만 발의된 불신임안들은 과반수를 넘지 못해 실각은 이뤄지지 않았고 마크롱 정부 입장에선 다행히 정책을 이어올 수 있었어. 하지만 2026년 예산안에 지난해보다 더 강력한 긴축안이 담기자 의회는 다시 또 반발했어.

바이루 총리는 불신임안을 받기 전, 선제적으로 신임안 표결을 받겠다고 선언했고, 9월 8일 표결이 이뤄졌지.

이 표결에서 364명의 국회의원이 지금 내각을 믿을 수 없다고 반대표를 던지면서 부결. 1958년 프랑스 5공화국이 출범한 이래 내각에서 제안한 신임안이 42번 있었는데 부결된 건 이번이 역사상 처음이야. 결국 바이루 내각도 9개월 만에 실각되었지.

그리고 9월 9일 새로운 총리로 지명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르코르뉘 총리는 시민들의 반발이 컸던 공휴일을 축소하겠다는 말을 바로 주워 담았어.

또 부자감세에 대한 반발이 컸던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고위층에게 제공하던 특혜 예산을 먼저 삭감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어. 르코르뉘는 전직 총리와 장관에게 제공되는 특혜를 없애거나 줄이기로 결정했어. 그동안 전직 총리에게는 기한 제한 없이 차, 운전기사가 제공되어 왔는데 내년부터는 퇴직 후 10년으로 제한돼.

임명되는 총리들마다 불신임을 각오하면서까지 긴축 예산안을 내는 이유는 프랑스 재정 상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야. 일각에선 IMF 구제금융 가능성까지 언급될 정도로 프랑스는 매우 심각한 재정 상황을 안고 있거든.

프랑스의 국가 부채는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어. 이미 3조 4천 억 유로를 넘겼고, 3초마다 1만 유로, 그러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1,600만 원 넘게 쌓여나가고 있지.

2000년부터 2024년까지 분기별로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을 나타내봤어. 2025년 1분기 기준으로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114.1%. 프랑스 정부가 진 빚이 프랑스가 벌어들인 소득의 1.14배라는 뜻이야.

이번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볼게. 프랑스의 부채 비율은 그리스, 이탈리아에 이어 3위야. 즉 프랑스는 과거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은 그리스, 이탈리아와 같은 그룹에 위치해 있다는 거야. 문제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는 점점 재정 상태가 개선되고 있는 반면에 프랑스는 그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는 거지.

프랑스 재정의 특징 중 또 다른 하나는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더 지출 비율이 높다는 거야. 2023년 기준으로 프랑스는 다른 유로존 국가들 중에 가장 GDP 대비 정부 지출 비율이 높아. 무려 57.0%로 독일과 비교하면 거의 10%p 가까이 차이가 나. 참고로 우리나라가 2022년 기준으로 GDP 대비 36.2%를 지출하고 있으니 프랑스가 얼마나 '큰 정부'인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 지출을 하길래 이렇게 차이가 나느냐 하면, 바로 복지야.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 사회보장 영역 지출이 높은 게 사실이지만 그중에서도 프랑스는 아주 높아.

사회보장 지출만 보면 핀란드가 25.7%로 1위고, 프랑스가 23.4%로 2위야. 뿐만 아니라 의료 영역에서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지.

복지 영역 가운데서도 현재 프랑스 재정에 가장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건 바로 연금이야. 과거 1982년 미테랑 대통령이 추진한 사회 개혁으로 연금 수령 연령이 65세에서 60세로 축소되면서 은퇴자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크게 늘어났고, 이게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엄청난 재정 부담이 되고 있거든.

2010년에 연금 수령 연령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했고 지난 2023년에 마크롱 대통령이 다시 또 2년 더 연장하려 했다가 엄청난 역풍을 받은 바 있지. 당시 격분한 시민들이 보르도 시청사 정문을 불태우는 등 폭력 시위로 번지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연금 문제는 꼭 풀어야 할 숙제야. 앞으로 고령화가 이어지면 받을 사람은 늘어나고, 연금 재정에 기여할 사람은 줄어드니까. 1960년엔 연금을 받는 사람 1명 대비 연금 기여자가 4명이었지만, 2022년엔 1.7명으로 급감했어. 2040년엔 1.5명이 될 예정이고. 심지어 프랑스 은퇴자들이 받는 연금액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많아서 재정 악화는 가속화될 전망이야.

은퇴자 가구의 평균 소득과 일하는 세대 가구의 평균 소득을 비교한 그래프야. 주요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프랑스는 100%를 넘어서. 즉 은퇴자가 받는 연금이 근로연령대의 평균 소득보다 더 많다는 거야. 그러다 보니 프랑스 정부는 미래 세대들을 위해 윗 세대들이 희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어.

일하는 세대들에게 책임과 부담이 가중되면서 이들을 향한 자조적인 밈도 유행하더라고. 30대 고소득 근로자를 뜻하는 이른바 '니콜라'가 그 주인공이야.

니콜라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월급에서 정부는 세금을 거두고, 이 세금은 베이비 붐 세대들 연금으로도 나가고, 또 아프리카 원조 비용으로 보내고, 또 일부는 이민자에게 보내고 있지. "나라에 돈이 없다고? 걱정 마~ 니콜라가 낼 거니까!" 열심히 일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자조적인 밈이 유행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지만, 풀어야 할 실타래가 너무 많은게 현재 프랑스의 상황이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복지에 대한 시민들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데… 쉽지가 않지.

이런 어려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선 정치권이 나서서 대화와 토론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데 그것도 또 쉽지가 않아. 지금 프랑스 17대 의회는 진보, 보수, 중도 어느 정치 세력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거든. 이들이 대화와 타협을 해내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각자가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고 있어.

이번 대규모 시위를 주도했던 좌파 정당과 노조의 입장은 부자 감세가 재정을 망쳤다는 거고, 마크롱을 비롯한 중도 진영은 과도한 복지 지출과 고령화를 근본 원인으로 인식하고 해결하려고 해.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은 이민자를 위한 지출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고.

이렇게 정치권은 꽉 막혀있고 그 사이 시민들의 불만은 쌓여만 가고, 프랑스 재정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어.

100만 명이 거리로 나선 분노의 배경에는 깊어지는 프랑스 재정 위기가 있었어. 프랑스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지만 연달아 무너진 내각은 이 선택이 얼마나 해결하기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지.

오늘 프랑스의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마음 한 편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야. 우리나라 역시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실타래를 풀지 못하고 있고 고령화나 출산율은 프랑스보다 심각해. 게다가 프랑스와 달리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도 안고 있어.

과연 프랑스는 급속한 고령화와 복지 확대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재정 건전성과 복지 정책, 그 사이에서 프랑스, 그리고 우리는 어떤 고민이 필요할까? 구독자는 어떻게 생각해? 오늘 준비한 편지는 여기까지야. 긴 글 끝까지 읽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바이루 예산안 반대 청원

프랑스 노동조합은 바이루 총리의 예산안을 비판한다면서 청원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어.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새 예산안이 노동자, 사회보장 수혜자, 공공 서비스 담당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하지. 이 청원에 참여한 사람들은 39만 명에 달해. 재정 위기와 사회 복지 사이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프랑스 정부는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