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렇게 유전 정보를 활용한 IQ 예측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해. 신뢰도가 매우 낮다는 거지. 미국의 한 통계 유전학자는 유전체를 통한 IQ 예측은 현대판 '뱀 기름'이라며 사기에 가까운 서비스라고 비판을 하기도 했어. 참고로 '뱀 기름'은 의학적 근거는 없지만 만병통치약처럼 팔린 사례를 가리키는 미국식 표현인데, 우리나라의 음이온·게르마늄 팔찌를 떠올리면 비슷할 거야.

사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다양한 유전공학 서비스를 쉽게 접할 수 있어. 자신의 혈통을 유전자로 확인해볼 수 있는 키트부터 질병예측 검사까지… 다양한 서비스들을 해 볼 수 있지. 이런 유전자 검사 뿐 아니라 최근 급증한 시험관 아기도 유전공학 발전의 산물이라 할 수 있고.

인류 최초의 시험관 아기는 1978년 영국에서 태어났어. 이후 반세기 동안 전 세계에서 수많은 시험관 아기가 탄생했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연구진이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1978년부터 2018년까지 전 세계에서 태어난 시험관 아기는 최대 1,301만 9,331명으로 추정돼.

21세기 들어서면서 그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연구진들은 2019년 이후에도 매년 300만에서 400만 명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나고 있다고 추정했는데, 이 수치까지 합치면 2024년엔 누적치가 최대 1,700만 명까지 늘어나.

우리나라의 상황도 비슷해. 우리나라도 정부의 시술 비용 지원 사업에 힘입어서 매년 시험관 아기가 늘어나고 있어.

2023년 전체 출생아 23만 명 가운데 난임 시술 지원을 통해 태어난 아기는 모두 2만 6,612명. 2020년엔 전체 출생아의 7% 수준에 그쳤지만 어느새 10%를 넘기고 있어.

앞서 살펴본 미국 스타트업처럼 우리도 시험관 아기 시술을 진행하는 과정에 배아의 유전적 건강 상태를 테스트하고 있기도 해. 바로 '착상 전 유전검사'라는 이름으로 말이지.

이 검사를 통해 배아의 염색체 수가 적거나 많지는 않은지, 또 염색체 구조엔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하고 있어. 다운증후군이나 발달장애 등의 위험을 사전에 확인하기 위해서 테스트를 진행하는 거야. 유전자 검사 역시 유전병의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고.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질환을 다 검사할 순 없고, 230개의 질환에 대해서만 테스트를 할 수 있어.

반면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이 제약을 넘어서 당뇨, 여드름, 탈모 같은 특성 뿐 아니라 지능과 키, 몸무게까지 확장해서 예측했던 거야.

생명의 탄생에 인위적인 조작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 것인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야. 또 치료 목적이 아닌 유전자 조작은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기도 하지. 설령 유전병을 치료하는 목적이더라도 인간 배아에 있어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많아.

왜냐하면 미끄러운 비탈길에 놓여있는 공처럼 첫 시작은 아주 사소한 움직임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수준으로 굴러갈 수 있기 때문이야.

문제는 유전공학의 발전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거야. 그 영향으로 앞으로 우리가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지점은 더 많아질 수 밖에 없을 거고. 특히나 이 발전에 가속 페달을 밟은 건 유전자를 직접 조작하고 편집할 수 있는 CRISPR의 발견이 있어.

2012년 6월 사이언스 지에 발표된 논문에는 박테리아가 바이러스에 대응하는데 사용하는 CRISPR 시스템을 유전자 가위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어. 마치 워드나 한글 문서를 수정하듯이 DNA 서열을 가지고 잘라내기, 붙여넣기가 가능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온 세상이 떠들썩 했지. 논문이 나온지 10년도 되지 않았는데도 연구에 참여한 두 학자는 2020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어.

물론 이전에도 유전자 편집 기술이 있었지만, CRISPR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효율이 좋고 정확성이 압도적이었어. 그 영향으로 유전자 편집 시장은 엄청나게 커졌고.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프리세덴스 리서치 자료야. 2024년 유전자 편집 시장 규모는 40억 4천 만 달러인데, 5년 뒤인 2030년엔 78억 6천 만 달러로 2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어. 2034년엔 133억 달러를 넘길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문제는 이렇게 접근성이 좋아진만큼 미끄러운 비탈길에서 자칫 잘못하면 선을 넘어버리는 위험한 실험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도 커졌다는 거야. 실제로 일부 과학자는 인간 배아 유전자를 편집하기도 했어. 중국의 프랑켄슈타인 박사로 불리는 허젠쿠이가 그 주인공이지.

허젠쿠이는 2018년 인류 최초로 인간 DNA를 조작한 아기를 만들었다고 발표했어. 에이즈 양성인 아빠와 에이즈 음성인 엄마, 이 부부의 임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하면서 태아의 DNA를 조작해서 에이즈 저항성을 갖추도록 한 거야.

이 사건이 밝혀진 직후 과학계는 난리가 났어. 중국 과학계 뿐일까? 국가를 가리지 않고 엄청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어. 중국 정부도 바로 조사에 들어갔고 결국 허젠쿠이는 3년 징역형과 300만 위안 벌금형을 선고 받았지. 3년형을 살고 나온 허젠쿠이는 지금도 배아 유전자 조작 연구를 이어 나갈 계획이라 논란은 이어지고 있어.

실리콘밸리에서도 배아 편집에 대한 관심이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어. 앞서 언급되었던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자신의 SNS에 배아 유전자 편집에 관심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거든. 배아 편집 기술 개발팀에 참여할 전문가를 모집하는 홍보글을 올릴 정도로 본격적인 모습이야.

일부 과학자들의 일탈이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연구진들은 CRISPR로 치료하기 어려웠던 유전병을 정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중이야. 최근엔 그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지. 바로 낫 적혈구 증후군 치료제야.

원래라면 원반 형태의 적혈구여야 하는데, 염색체에 이상이 있는 경우엔 이렇게 낫 모양의 적혈구가 생겨. 낫 모양의 적혈구를 갖고 있는 환자들은 만성 빈혈에 간 기능 저하 등 다양한 혈액 관련 질병을 겪지.

연구진들은 문제 있는 염색체를 해결하기 위해 CRISPR를 활용했고 결국 세계 최초로 유전자 가위 치료제인 카스게비가 나온 거야. 카스게비를 만든 크리스퍼 테라퓨릭스 뿐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이 CRISPR를 활용한 약품 제작에 뛰어들었어. 에디타스 메디신, 인텔리아 테라퓨틱스 등이 대표적이지. 우리나라의 툴젠도 이 영역에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CRISPR 뿐 아니라 다양한 유전공학 기법을 활용한 유전자 치료는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어.

지난 1990년부터 2023년까지 유전자 치료 관련 임상 시험 데이터야. 확실히 2012년 CRISPR 논문이 나온 이후를 보면 급격히 늘어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이렇게 많은 기업들이 뛰어들며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까지 초기 단계라는 것이 발목을 잡고 있어. 개발된 치료제의 가격이 상당히 비싸거든. 일단 카스게비는 1회 치료에 무려 220만 달러가 들어. 우리나라 돈으로 30억 원이 넘어.

치료제 뿐 아니라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야. 앞서 살펴본 배아 분석 서비스도 고가이고, 시험관 아기 역시 정부 지원금 없이 개인이 부담하기엔 상당히 부담이 돼. 그러다보니 가진 사람들만 유전공학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와. 부자들이 더 나은 형질의 배아를 고르는 게 더 보편화된다면 어쩌면 미래에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유전적으로 격차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거지.

앞서 살펴본 배아 조작 유행도 기술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 밸리에 불고 있고, 이들 중에는 더 적극적으로 ‘출산장려운동’에 나서는 사람들도 있어. 그리고 여기엔 보수 정치 세력도 힘을 싣고 있지.

미국의 정치전문 언론사 폴리티코에서는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출산장려에 앞장서면서 인종차별주의와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어. 이들 가운데 일부는 출산장려를 통해 다른 인종보다 백인이 더 많아져야하고, 또 진보 세력보다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거든.

그리고 이 출산에는 유전공학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입장인거지. ‘출산장려운동’을 이끄는 맬컴 콜린스, 시몬 콜린스 부부는 배아 조작 서비스 기업의 열혈 이용자이기도 해. 그리고 이 기업들은 실리콘밸리의 보수 네트워크의 자본과 인맥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지. 참고로 시몬 콜린스는 피터 틸 밑에서 일을 했었고, 맬컴의 형은 일론 머스크가 꾸린 정부효율부 DOGE에서 일을 하고 있어.

오늘 준비한 편지는 여기까지야. 긴 글 끝까지 읽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이 발전하면서 형제자매의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그와 유전형질이 같도록 만든 ‘맞춤형 아기’들이 태어나기도 해.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에는 맞춤형 아기로 태어난 안나의 이야기가 나와.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언니 케이트를 위해 태어난 안나는 백혈구, 줄기세포, 골수까지 언니한테 기증하며 살아왔어. 그런데 11살이 되자, 안나는 이런 현실에 불만을 갖고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걸게 돼. 안나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꼭 한번 봐봐!